“Ultreia!”
순례 길을 떠날 때 외치고 순례 길에서 다른 순례자를 만날 때도 외치는 말입니다.
‘울트레이아(ultreia)’는 ‘더 멀리’라는 뜻으로 순례 길에서 순례자가 서로 용기를 북돋우려는 의도로 사용하는 말이며 라틴어와 옛 프랑스어에 어원입니다.
순례 길은 걷기 자체가 일이고 걷기 자체가 어려움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사람, 다른 여러 국가의 사람을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기간입니다. 즉, 많은 언어와 마주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카미노 프란세스(Camino frances)는 프랑스 길이라는 의미지만, 실은 프랑스 끝자락에서 출발해 스페인을 걷는 길입니다. 한편 프랑스를 걷는 길은 ‘슈맹 르퓌’가 대표적이며 르퓌 앙 벨레에서 출발해서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에 가까운 생쟝피에드포르까지 걷는 길입니다.
카미노 프란세스를 걷는다면 스페인어를 많이 접하고 슈맹 르퓌를 걷는다면 프랑스어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허나 정도는 다르지만, 누구나 사용하는 영어를 가장 많이 접하게 됩니다. 동양어 중에는 아마도 한국말이 가장 많이 사용될 것 같습니다. 스페인을 걷는 카미노 프란세스에는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순으로 많다고 하니 말입니다.
순례길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목적지입니다. 출발은 어디서든 가능하지만, 모든 길은 산티아고로 향합니다. 목적지인 산티아고에 도달하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걸어서 이동하기에 원하든 원치 않든 걷는 길에서나 숙소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 인사도 나누고 정보도 나눕니다. 마음이 맞는다면 함께 걷기도 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기에 말은 필연적으로 따릅니다. 영어는 어느 나라 사람과 만나든 대화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수단이기에 당연히 가장 중요하며 다른 언어까지 한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언어의 관점에서 저의 순례길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영어가 편한 편입니다. 프랑스어도 말하지만, 오랫동안 드문드문 사용했기 때문에 처음 도착 때는 꽤 불편했습니다. 말을 하기 위한 ‘음 만들기’조차도 상당히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 수록, 길을 걸을 수록, 매일 사람들과 음식과 와인을 나눌 수록 제 불어는 더 나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번에 걸은 길은 프랑스에 있는 길이었기 때문에 불어 사용이 70% 정도 된 듯합니다. 영어가 30% 정도일 것 같습니다. 스페인어, 독일어, 이탈리아어도 조금씩 사용했습니다. 영어는 영국, 미국, 프랑스, 벨기에, 독일, 스위스, 스웨덴, 덴마크, 이탈리아, 체코, 폴란드 등 여러 나라 사람들과 소통했습니다. 이번 순례 길을 걷는 동안 동양인은 만난 적이 없어 한국말을 포함해 동양어로 인사 한마디조차 나눌 기회는 없었습니다. 제가 걸은 시기는 많은 사람이 걷는 때가 아니었고 걷는 사람 수가 아주 적었기 때문에 제가 만난 ‘모든’ 사람과 적어도 짧은 대화라도 나누었습니다. 심지어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사람과도 가던 길을 멈추고 서로의 길에 대해 묻고 몸 상태를 걱정하고 용기를 주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하루에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극히 적었기 때문입니다.
순례길에서 만나는 사람은 모두 초면이지만, 걷는 사람은 동료라는 생각이 들며 때로는 가족이 되기도 합니다. 함께 걷고, 식사하고, 같은 곳, 같은 방에서 잠을 자기도 합니다. 그러다 금세 헤어지기도 합니다. 각자의 걸음 리듬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걷는다는 것은 흔히 배려로 해석됩니다. 간간히 마주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함께 걷지는 않지만, 같은 장소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저녁을 함께 먹기도 합니다. 다시 만났을 때는 아주 반가운 사람도 있습니다.
이틀을 같은 곳에서 자고서 잠깐 함께 걸은 프랑스 여자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이 저보다 많이 앞섰다고 생각했었지만, 어느 날 오후 식품점에서 마주쳤습니다. 그분은 저를 안을 태세였지만, 대신 두 손으로 제 손을 꼬옥 잡고서 한참을 놓지 않았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그 반가움의 정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식료품점에서 줄을 서 있던 다른 프랑스인들이 이상하게 느낄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저와 함께 성당을 구경했습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아름다운 성당이라 유일하게 돈을 지불하고 구경한 성당이었습니다. 저는 그 여자가 예배드리는 의자에 한동안 앉아 있는 동안 기다리지 못하고 나온 후 다시 헤어졌습니다.
저는 그때 저보다 느리게 걷는 사람이 없어 성당을 나오면 저를 따라 잡아 만날 것으로 생각했으며 적어도 숙소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때가 마지막으로 본 것으로 끝났습니다. 글을 적는 이 순간에도 미소가 지어집니다. 그 여자만 생각하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천사같은 순수함과 밝은 모습이 잊혀지지 않고, 지금도 저에게 미소를 전해 줍니다.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나이 직업 이름 등 아무 것도 모릅니다. 사진조차 찍지 않아 그 모습은 머리에만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말을 통해 그 여자분을 어느 정도는 이해했기에 이런 강한 느낌이 다가왔으리라 봅니다.
순례길은 우연한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입니다. 걷는 도중 만나는 사람은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용기를 주고 위로의 말을 건냅니다. 심지어 차를 멈추고서 걷기는 괜찮은지, 힘들지는 않는지를 묻고, 용기의 말을 건네는 운전자도 있습니다.
길에서 말은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서로의 따뜻함을 주고받는 중요한 매개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말은 더 잘 할 수록 더 자신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말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지만, 이 마음을 상대에게 좀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말입니다. 스페인 노래에 ‘코라손(Corazon)’이 그렇게 자주 나오는 이유를 점점 이해하게 됩니다. 사랑과 따뜻함은 ‘가슴/마음/코라손’이 표현하는 것이지만, 말이 더해지면 더 따뜻해집니다.
순례길은 육체적으로 극도로 피곤하고 힘든 여정입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고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비록 걷는 것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세상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따뜻한 마음이 있기에 많은 사람이 걷고 매년 휴가를 순례길에서 보내는 사람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말을 통해 상대를 더 잘 이해하고서 더 깊은 위로와 따뜻함과 정을 나눌 수 있기에 순례길이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마음이 말/언어라는 매개를 통해 표현될 때 따뜻함은 더 포근하게 상대의 마음을 감쌉니다. 다양한 언어, 반듯한 말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곳이 순례길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르퓌 순례 길 이야기 »
답글 남기기